달력이라는 개념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바빌로니아의 달력 그레고리력의 고대 조상은 3,500년 전 바빌론에서 사용하던 달력이다. 이 달력의 한 해는 열두 달이었으나 한 달은 29일 또는 30일이었다. 태음력의 각 달은 초승달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저녁을 기점으로 했다. 그러니까 하루의 시작은 저녁의 해 질 녘이었다(이러한 관행은 오늘날에도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공동 유산으로 남아 있다). 달의 이름은 지역에 따라 달랐지만, 니푸르(이라크의 바그다드 남동쪽)에서 사용하던 이름들이 처음에 바빌로니아에서, 나중에는 아시리아에서도 사용되었다. 기원전 586년 바빌로니아가 예루살렘을 병합함에 따라 그 이름들은 오늘날 유대 달력에도 반영되어 있다. 달의 이름은 춘분에서 시작했다. 태음력을 계절의 변화에 맞추기 위해서 이따금씩 한 달(윤달)이 추가되었다. 기원전 2000년경부터는 여섯 번째 달(울루루)과 열두 번째 달(아다로)을 반복하는 방식으로 윤달을 만들었다. 이렇게 달을 반복시키는 결정은 왕이 내렸다. 예컨대 바빌론 황 함무라비(기원전 1818~1806)는 다음과 같이 포고했다. 될 것이므로, 타슈리투 달의 24일에 바빌론으로 조세를 납부하도록 되어 있는 곳에서는 둘째 울루루 달의 24일에 납부하도록 하라."기원전 500년경부터는 19년마다 일곱 개의 윤달을 삽입하는 제도가 일관적으로 시행되었다. 당시 사람들은 해와 달이 19년마다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다고 믿었는데, 그 이유는 19개의 태양년이 태음월의 완벽한 수(235개월)와 일치하기 때문이었다. 그 기간 동안 날의 수는 모두 합쳐 6,940일이었다. 이와 같은 19년 주기는 발견자라고 추정되는 기원전 5세기 후반의 그리스 천문학자 메톤의 이름을 따서 '메톤 주기'라고 불린다. 그러나 현재의 견해에 따르면 그 주기는 메톤보다 이전 인기 원전 5세기 초반에 바빌로니아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별 달력 천체를 가지고 시간을 측정하는 또 다른 수단은 별의 관측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지구는 자전축을 중심으로 23시간 56분 만에 한 바퀴를 자전한다. 그런데 하루는 이것보다 4분이 더 길다. 이 4분 동안 지구는 태양 주위의 공전 궤도를 따라 4분만큼 더 진행한다. 이는 곧 (우리의 24시간 태양일을 기준으로 할 때) 별이 뜨고 지는 시간이 매일 밤마다 4분씩 빨라진다는 뜻이다. 별이 낮에 뜰 때는 햇빛 때문에 보이지 않지만, 1년 중 어느 날에는 해가 뜨기 직전, 잠시 확실히 볼 수 있을 만큼 이른 시각에 동쪽에서 뜰 것이다. 따라서 특정한 하나의 별이나 별들의 집단을 선택하여 이것이 처음으로 새벽에 뜨는 것을 알면 편리한 시간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 신성한 인격체가 눈에 보였다가 사라지면서 매년 한 차례씩 하늘을 행진한다는 우주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 별이 극적으로 등장하는 시간은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별의 연간 행진에서 주목할 만한 또 다른 날은 그 별이 마지막으로 뜨는 저녁이다. 그 별은 매일 밤 점점 일찍 떠서 밤새 하늘에 있다가 마침내 어느 날에는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 밤이 시작된 직후에 동쪽에서 뜨게 된다. 이 별이 처음으로 지는 새벽(동이 트기 직전 서쪽으로 질 때)과 마지막으로 지는 저녁(일몰 직전 서쪽으로 질 때)도 역시 시간 신호의 역할을 할 수 있다. 고대의 사회들은 대부분 이런 현상을 잘 알고 있었다. 적어도 기원전 1000년 무렵의 바빌로니아 달력에는 특정한 별들이 새벽과 저녁에 뜬다는 관측 결과와, 지점 및 분점의 날짜가 기록되었다. 그리스의 별 달력 그리스에서 처음으로 별을 이용하여 시간을 측정한 것은 기원전 750~700년으로 알려져 있다. 헤시오도스의 <노동과 나날이라는 농경 시에는 다섯 개의 별과 별 집단이 뜨고 지는 것에 관한 아홉 가지의 관찰 기록이 나와 있다. 그는 또한 하지와 동지를 기준점으로 사용했다. 그는 순전히 별이 뜨거나, 지거나, 중천(中天)에 오르는 경우를 준거로 삼아 특별한 일을 하는 시기를 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 세 가지 경우에서 그는 천체의 현상이 진행되는 날짜에 맞추어 농경이나 항해에 관한 일을 할 적절한 시기를 지시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이제, 제우스가 겨울날을 60일 더 만들었을 때, 아르크투루스 별은 태양이 자신의 길을 지나간 다음에 대양의 신성한 흐름을 뒤로하고 맨 처음 솟아올라 저녁의 인저리를 비추는 별이 된다. 그의 뒤를 이어, 높은 소리로 지저귀는 판디온의 딸 제비가 봄이 막 시작될 무렵에 뭇사람들의 시야에 들어온다. 그녀가 머무는 시간에 포도나무의 가지치기를 하라. 헤시오도스의 달력은 극소수의 천체 현상을 효과적으로 선택하여 중요한 농경 시기와 직접 연결시켰다는 점에서 뛰어난 것이었고, 높은 수준의 글 읽기나 셈하기를 몰라도 된다는 점에서 소박한 것이었다. 이와 같이 농부들과 선원들을 위해 비교적 초보적이면서도 실용적인 별 달력이 만들어진 이후, 다음 단계는 기원전 5세기 후반에 가서야 등장했다. 그것은 파라페그마(parapegma)라고 불리는 달력으로서, 계절에 따라 별이 뜨고 지는 시기에 관한 공식적인 기록이었다. 그 달력을 발명한 사람은 천문학적 연구로도 잘 알려진 메톤(Meton, 기원전 440경~?)과 에욱테몬(Euktemon, 기원전 5세기)의 두 사람이었다. 별을 이용한 파라페그마의 발전된 형태는 석판에 새겨져 지금까지 전해진다. 목판도 사용되었겠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런 석판의 조각들은 지중해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다. 석판에는 많은 세로줄이 있고 365개의 구멍이 뚫러 있는데, 하루가 지날 때마다 나무못을 옆 구멍으로 계속 옮기는 식으로 이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몇 개의 구멍 옆에는 그날의 별들을 관측한 결과가 끌로 새겨져 있다. 관측 내용이 없는 날들은 그냥 구멍만 연달아 뚫려 있다. 메톤과 에욱테몬이 만든 원래의 파라페그마는 전해지지 않으며, 후대의 문헌들에서도 메톤의 달력에 관한 언급은 별로 없다. 그러나 에욱테몬의 달력에 관해서는 후대의 문헌에 많은 증거가 있는데, 그것이 당시 널리 사용되던 달력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다. 처음에 에욱테몬은별을 관찰하는 사이사이에 날짜 계산만 했지만, 점차 파라페그마를 '황도의 달'에 따라 편성하게 되었던 듯하다. 별의 관측을 황도의 달에 맞추었다는 것은 태양이 지나가는 길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형태의 달력으로 이행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그리스인들은 바빌로니아에서 황도대를 열두 개의 30도짜리 호(孤)로 구분한 것을 받아들여 기원전 5세기 후반에는 이미 태양이 지나가는 황도를 인식하고 있었다. 따라서 기원전 4세기 초반 그리스의 천문학자 에우독소스(Eudoxos, 기원전 408경 ~ 353경)는 황도의 열두 개 별자리를 모두 알고 있었다.